외가가 있었던 군산에 가면 늘 궁금했었다. 내 어릴 적 외갓집은 일본식 집이 많은 동네에 있었고, 가옥 구조는 여러 개의 다다미방과 이발이 잘 된 향나무정원이 넓은 일본식 집이었다. 외갓집은 서수면에서 60년대 초, 군산으로 이사, 1974년 봄,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고 하니 난 당시 중3 때이다.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군산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불쑥 외갓집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잘 알려진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부근에 가면 왠지 익숙한 동네 느낌으로 다가왔고 이 동네 어딘가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외갓집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마침내 외갓집을 찾았다. 경기도 사는 외사촌 동생이 와서 언니들과 함께 추억의 군산 방문을 하게 되었다. 월명동에서 점심을 먹은 후, 동생은 옛집에 가보자고 했다. 동생은 일 년에 한두 번 군산에 올 때면 옛집 대문 앞에서 추억을 꺼내보곤 한다고 했다. 동생을 따라 찾아간 외갓집은 히로쓰가옥(동생 기억으로 당시는 호남제분 사장집)담이 끝나는 곳에 나 있는 작은 골목길 끝에 있었다. 아! 내 눈엔 왜 이 골목길이 보이지 않았지?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외갓집 대문에 걸린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간판이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대문을 두드리니 유재임 사무처장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남매들은 정신없이 집안을 둘러 보았다. 일본식 옛집이었던 외갓집은 내부가 70년대식으로 다 바뀌었지만 어릴 적 숨박꼭질 하던 방들과 넓은 마당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옛집 일부는 옆집으로 들어갔다며 유사무처장이 가옥의 변천사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동생은 실로 근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집안으로 들어와 봤다며 감개무량하다고 하였다.
군산 외갓집은 내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방학 때면 늘 외갓집에 가서 일주일쯤 사촌들과 놀며 지냈다. 엄마 손을 잡고 이리역에서 군산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는 들녘이 참 좋았다. 언젠가는 우리집에서 키우던 닭을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가다가 닭이 기차 창밖으로 날아가 엄마가 애석해하던 일도 생각난다. 군산역에서 내려 외갓집으로 걸어가는 길, 판잣집이 가득한 산동네를 바라보았던 기억도 있다.(뒤에 황해도 실향민이 군산에 많이 왔다고 들었다.) 외갓집에 가면 월명공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참 좋았다. 제분공장 밀을 싣고 왔다는 큰 배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또 외갓집에서 먹었던 반찬으로 박대, 울외장아찌가 참 맛있었다. 그래선지 난 지금도 군산 토속먹거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군산을 찾았던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의 군산 거리에는 미군들이 참 많았었다. 동생은 어릴 적 미군들에게 초콜릿을 얻어먹던 콩글리시를 생생하게 재현해 우리는 큰소리로 웃었다. 또 외갓집 옆에 고아원이 있어서 식사 시간 전 아이들 합창 소리가 났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엔 고아가 참 많았던 시대였지.
우연히 찾아간 외갓집 옛집에 군산참여연대가 둥지를 틀고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 반가웠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옛집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은 참 고마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추억의 외갓집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찾을 날을 기약하며 우리 남매들은 행복한 군산행을 마무리했다. (2021. 7. 23 이미영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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