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만났던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수업시간에 그리도 활발하게 자신의 생각을 잘 발표하던 아이들이 머뭇거리고 풀이 죽어 있단다. 이는 시험을 보고난 후 풍경으로, 아이들 스스로가 교실 안에서 성적순으로 서열을 만들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성적이 높았던 친구의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시험 성적 결과로 아이들은 체험을 통한 다양한 지식, 독서를 통해 얻은 사고력, 자신이 갖고 있는 보석 같은 창의적인 생각 등을 마음깊이 묻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입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초등학교 아이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할수록 시험 횟수는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은 자신의 꿈과 미래를 성적에 가둬버린다.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일제고사는 아이들 소싸움 시켜놓고 어른들은 즐기는 학대교육이다. 30년 후를 살아갈 세대, 그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최근 정부의 학교자율화정책 발표 이후 도내 초, 중학교에서도 매일고사가 부활하고 있다. 매일 고사는 말 그대로, 매일 시험지를 풀고 아이들은 답을 찾는 훈련을 하게 된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고 지난 80년대 교육현장 모습이 떠올라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필자가 교사의 꿈을 안고 교단에 섰던 80년대 중반 무렵, 성적 비관으로 해마다 100여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의 자살 소식에 몸서리를 치며 학교에 출근하면, 아침 자율학습시간에 매일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시로 실시되는 모의고사, 학력고사를 보고 나면 시군별, 학급별로 비교분석하여 성적이 발표되었는데 교육당국은 오직 이 결과로 학교평가, 교사평가를 실시하였다. 마침내 경쟁이 극에 달해 시험지가 유출되는가 하면, 모의고사가 실시되는 날, 평균점수를 깎아 먹는 아이들은 병결로 둔갑하기도 하였다. 자연히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동아리 활동은 무시되었고, 체험학습, 독서교육, 인성교육은 학교 교육 과정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뜻을 가진 젊은 교사들이 "살인적인 보충자율학습, 매일고사, 모의고사를 철폐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88년 어느 날, 500여명도 넘는 중고생들이 전주 남문교회, 성광교회에 가득 모여 "우리들에게 생각할 자유를 달라,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 종교생활을 할 시간을 달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당시 교사로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교육당국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진행하라고 하던 학력증진 교육방식이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에 필요한 창의적인 인간 양성이 아닌 산업사회에 순응하는 퇴행적인 인간양성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몸을 던지며 항거하는 사이, 많은 교사들이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아야 할 책무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덴마크 미래학자인 롤프 옌센은 현대 지식정보화사회 이후의 사회에는 'Dream Society'가 도래하는데, 이 사회는 꿈과 이야기, 감성을 바탕으로 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로써 문화적인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 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래사회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야 하는 2008년 지금, 정부의 교육 정책은 자꾸만 20여 년 전의 학교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너무나도 똑같이 닮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부모의 학벌과 경제수준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교육양극화현상이 보다 극명해졌다. 지금은 훨씬 정교하고 다양한 교육정책, 교육복지와 비젼을 제시하는 개혁을 추진해야할 시기이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공동체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과정 속에서 학부모들은 정부도, 학교도, 교사도 믿을 수 없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다. 학부모와 교사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의 학력신장을 위해서, 미래사회 적응할 수 있는 지성인을 길러내기 위해서, 능력과 인격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기에 교육개혁의 핵심주체인 교사들의 고뇌와 진정성이 학부모에게 전달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선결조건이 아닐까?
2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학교 현장을 바라보며 진정한 교육공동체 형성을 기대해본다.
2008.6.13 전북일보/이미영(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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