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삶을 가꾸는 논술교육
이미영(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이사장)
저녁 7시, 작은 사무실에 철학 특강을 듣기 위해, 멀리 고창에서, 인근 익산에서 30여명의 교사들이 모여든다. 지난달부터 철학이 있는 논술교육을 원하는 교사들을 위해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이 마련한 강좌 모습이다. 지금 학교현장에서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의 논술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고민거리이고 과제이다.
우리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인간형을 길러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자율학습이다 보충학습이다 해서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려야 하고 그나마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학원에, 그도 저도 아니면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이러한 교육 환경 속에서 올바른 논술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논술은 작은 의미로 볼 때 소통의 방식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을 펼쳐서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논술은 기껏 빨간 펜으로 첨삭지도 하는 수준의 단순한 작업이라면, 그런 논술은 금방 바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표현과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글은 자칫 공허해지기 쉽다. 제아무리 현란한 글쓰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가진 게 없으면, 머리에 든 게 없으면 글은 힘에 부친다. 경험만한 스승이 없다 했듯이 학교안팎으로 수없는 경험은 학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글의 깊이도 더하게 된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주말에 여행을 떠나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과 공원, 체육관에서 땀 흘리며 운동을 하거나 음악회나 전시회에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혹은 우리 사회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최선인지, 아니면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해답이 바로 독서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동시에 평화를 추구하고 자신의 삶의 자표를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독서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제대로 된 생각을 펼치기 위해서라면 수도 없이 많은 저서들을 읽고 자기 생각을 간추려 나가야 한다. 공부가 이런 게 아닐까!
그러나 지나치게 논술에만 힘을 쏟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어찌 세상에는 논술이라는 장르의 글쓰기만 존재하겠는가? 전문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문학적 글쓰기도 있고,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밝히는 수필도 많다. 그리고 제품의 설명서를 제대로 써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세상이 그물망으로 촘촘히 엮여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소통하는 방법은 논술 말고도 여럿인 것이다. 자칫 논술로 글쓰기가 획일화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쓰기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글쓰기를 삶의 반영이라고 볼 때 글쓰기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독서 없는, 경험 없는 논술이 얼마나 건조할 것인지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아이들의 책가방과 교실의 사물함속에는 번듯한 책들이 몇 권씩 들어있으며 집 가까이에, 그리고 학교에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이 있는 풍경, 또한 지역, 환경생태 답사, 복지 시설 방문을 통한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한번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위한 독서가 아닌 즐거운 독서시간을 주자, 그리고 돌아오는 휴일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신록이 푸르른 산으로 가자. (2006.4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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