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성적 공개는 신문 지면뿐 아니라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전국의 232개 시군구가 성적순으로 나열되더니 머지않아 학교별 성적순위까지 공개된다고 한다. 정부 교육정책의 슬로건인 "자율과 경쟁"이 결국은 학교를 일렬로 줄 세워 경쟁시키려는 것임이 명백해졌다. 이는 정부가 성적 결과를 놓고 지역간 교육 격차의 발생 원인을 면밀하게 분석 대처하기보다 경쟁 교육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할 확률이 크다. 물론 공교육은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적중심 경쟁 교육이 21세기 다양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간을 육성하지 못하며,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데 있다.
벌써부터 교육전문가들은 정부와 보수언론의 아전인수식 수능 성적 분석 이후, 지자체의 특목고 유치 바람, 평준화 해제 요구, 농촌학교 해체 가속화를 걱정하고 있다.
이번 수능 성적 분석에 지역 특성은 없었다. 전국의 232개 시군구는 각 기 다른 지역의 특성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도시와 농촌지역, 도시 근교지역과 벽지, 대도시와 중소도시 등 사회 경제적 조건이 다른 지역을 동일한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 이미 학생들의 도시 쏠림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학교에서는 이번 성적 공개로 열등감만 커졌다. 또한 보수언론에서 내세우는 00고의 기적 운운은 자칫 지역의 명문고 육성 하나로 모든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다.
수능 성적 분석에 교육 환경의 차이는 없었다. 지역의 학생수, 학교수 차이는 물론이고, 일반계고 비율 등 지역교육환경의 차이를 무시한 통계는 허상일 뿐이다. 오죽하면 성적 하위권으로 나타난 충남도는 낮은 성적 이유로 자체 도의 일반계고 비율이 75%(강원 53%)로 가장 높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미 교육 격차 발생 주요인이 부모의 소득 수준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이에 대한 교육적 보상과 기회 균등 정책을 보완하려는 의지 없는 수능 성적 공개는 그 의도가 불순하다. 만약 정부의 의도가 공교육에 대한 투자와 정책적 노력을 하기보다 성적 줄 세우기로 모든 교육적 책임을 학교와 학부모, 학생에게 전가시키고자 함에 있다면 말이다.
언론 보도(한국교육개발원, 2006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월 소득 400만원 이상 가정의 자녀가 특목고에서는 46.9%, 일반계고 25.4%, 전문계고 14.3%로 분포되어 부모의 소득수준이 교육 격차를 불러오는 주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필자가 가장 두려운 것은 수능 성적 공개가 교육현장에 미칠 파장이다. 일등과 꼴찌라는 숫자는 얼마나 선명하고 강력한가! 이러한 숫자놀음은 교육현장에서 성적 외의 그 어떤 교육적 내용과 효과도 의미가 축소되어버린다. 입시중심 교육에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문제인 소위 인성교육과 공동체적 가치 등은 더욱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성적 우수자인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아이들은 또다시 혼란과 무기력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한다. 청소년 자살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더 치뤄야 할 것인가! 독서, 운동, 동아리 활동 없이 오직 수업과 자율학습으로만 점철된 기숙사생활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성적 공개로 혼란스런 지금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10여년 전, 고교입시부활지역이었던 익산과 군산지역에서 왜 다시 평준화로 정책을 바꿨던가.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정책이 상위 20-30% 명문고와 나머지 학교로 분류되어 또다시 학벌과 학연사회를 조장하는 역기능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공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성적 하위권에 대한 정책적, 예산 지원이다.
정부는 교육 격차를 가져온 농어촌, 도시 빈민지역에 특별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21세기에 필요한 진정한 경쟁력있는 전북교육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2009.4.30, 전북일보)
/이미영(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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