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3
보령천북항-홍성서부중-충청수영성(오천항)
38년만에 꿈속의 학교로만 남았던 홍성서부중을 찾아가보았다.
천북항 부근에서 점심을 먹다가 주인장에게 다리만 건너면 남당리(홍성)라는 말을 들었다.
남당리라면 바로 인근에 서부중학교가 있는데~
홍성읍내에서 갈산리를 거쳐 가야했던 서부면이 다리가 놓여지면서 보령 천북항에서 곧바로 서부면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천북항에 가까이 올수록 갈산리, 결성리, 남당리 낯익은 지명이 보여서 가슴이 콩닥거렸었다.
점심을 먹고 다리를 건너 조금 달리니 학교 안내표지판이 나타났다.
언덕위에 아담한 학교가 옛모습 그대로 우뚝 서있었다.
교실에선 음악수업시간인지 음악소리가 교문까지 들렸다.
코로나19로 조심스러워 발을 떼지 못하고 교문에 서서 마음깊이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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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서부중! 내가 1982년 첫발령을 받아 1년간 근무했던 학교다.
서부중은 첫발령지이고 아이들과 첫 정을 나눈 학교지만 가슴 한켠에 쌓아뒀던 무거운 짐이 있었기에 인근을 오가면서도 들러보지 못했던 곳이다.
대학 졸업후 첫 발령을 받은 홍성이란 지역은 너무도 먼 곳이었고 생소한 곳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자취짐을 가지고 학교로 가는 길은 참 멀고도 멀었다.
익산에서 버스를 타고 군산 도선장에 와서 배를 타고 장항에 도착, 다시 기차를 타고 홍성역에 내려서 군내버스를 타고 갈산을 지나 서부면(천수만 인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에 첫 출근을 하니 황토 언덕 위 네모반듯한 학교 건물과 운동장, 중1학년만 있는 신설학교였다.
난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있는 1학년4반 담임을 맡아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학교라서 사회교사였던 난 미술과목도 맡아, 학생들을 인솔해서 미술대회를 나갔던 적도 있었다.
사회교사라고 업무분장을 시사홍보, 대통령각하지시사항전달 등을 맡았는데 특히 대통령(5공화국, 전두환)이 지시한 내용을 매주 월요일 교사, 학생에게 보고하고 홍보하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업무였다.
당시 충청도지역이라 그런지, 학교분위기가 그런건지 전북과는 달리 교사들도 5.18광주학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 했다.
학부모 대부분은 천수만에 기대어 바지락을 캐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었고, 아이들도 방과후 대부분 바지락을 캤다.
아침 등교할때 자신이 캔 바지락을 비닐봉지에 가지고 와서 양동이에 삶아서 함께 먹던 국물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아이들하고 바다로 바지락을 캐러 간 적도 여러번 있었는데, 아이들은 바지락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는게 신기했다. 학교 선생님들하고 남당리에 가서 소라를 먹었던 기억, 친구가 놀러와 인근 예산 덕숭산에 올라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대학시절 학생운동사건이 터지면서 난 전주검찰청으로 수없이 조사를 받으러 다녔고, 반년 내내 사표를 내라는 교육청과 교장선생님의 압력에 시달렸다.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시간은 황홀했고 가슴뛰었던 학교생활이었다.
학기말이 되자 다행히 충남교육청에서 1대1 맞교환 교사를 찾아서 전북인월중으로 전근을 보내 주었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하고 아팠던 젊은날의 서부중시절, 아이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난 다시 전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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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 전주로 오는길목, 보령 오천항에 있는 충청수영성(사적 501호)을 찾았다.
수영성의 관문인 망화문터 아치형석문에서 바라본 수영성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성안에 들어가니 규모가 큰 정자인 영보정이 있다.
영보정에서 바라보는 오천항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우리나라 항구중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내문에 의하면 영보정은 정약용, 이항복 등 대학자들도 나라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꼽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푸른하늘과 어우러진 푸른바다, 내륙 깊숙히 들어와 앉은 그림같은 오천항은 백제때부터 발달한 항구였고
수영성은 조선시대엔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지키고 왜구를 방어하는 기능을 했다고 했다.
작지만 웅대한 수영성과 아름다운 오천항에 마음을 다 주고 온 듯 하다.
동행해준 친구가 있어 더욱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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