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길!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걷다.
금강송, 황장목, 춘양목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소나무군락지인 울진으로 떠나보자!
울진군 서면 소광리는 여의도 면적 8배 크기로, 수령 200년 이상 된 소나무가 8만 그루에 이르는 소나무군락지로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도 선정된 바 있다.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은 1구간(13.5킬로미터), 3구간(16.3킬로미터)에서 소나무군락지를 잘 볼 수 있는데, 숲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탐방객을 1구간은 80명, 3구간은 1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숲길을 걸으려면 적어도 한 달 이전에 ‘금강소나무숲길’ 사이트에 들어가 인터넷예약을 해야 한다. 금강소나무길은 예약탐방가이드제로 지역주민이 숲해설사와 점심 식사 판매에 참여하여 마을 주민의 소득은 물론 자긍심 고취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숲길을 운영하고 있다.
금강송 군락지를 제대로 보려면 3구간을 선택해야 하는데, 난 아쉽게도 1구간(울진 두천1리-소광2리)을 예약했기에 보부상길을 걷기로 하였다.
1구간 보부상길은 옛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 내성장을 오가는 길로 당시 십이령길 중 네 개의 고개 길을 복원해놓은 길이다. 6월 13일 초여름 금강소나무숲길을 걷기 위해 울진군 서면 두천1리에 오전 8시30분에 도착하였다. 이윽고 숲해설사인 주민 김동극씨의 안내로 출발한 지점에는 ‘내성행상불망비’가 있었다. 조선말기 이 곳을 지나는 행상들에게 도움을 준 봉화지역의 정한조, 안동지역의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보부상들이 세웠다고 하며, 울진 사람들은 이 비를 ‘선질꾼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선질꾼비에서부터 바릿재로 오르는 길은 상당한 급경사로, 한참을 오르니 온 몸에선 땀이 비오듯 하는데, 옛 사람들은 지게에 소금을 지고 이 고개를 올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애잔하다. 울진장에서 미역, 소금, 어류를 지고 이 고개를 넘어 봉화 내성장, 춘양장에서 비단과 곡물로 바꾸어 오는 보부상인들은 이 고개를 넘으며 고생길을 노래로 승화시켜 불렀으니 바로 ‘십이령을 걷던 바지게꾼’ 노래이다. 오후 숲해설사인 송금숙씨는 이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한층 고갯길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미역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
대마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고개 이고개를 넘는구나
한양가는 선비들도 이고개를 쉬어넘네
오고가는 원님들도 이고개를 자고넘네
꼬불꼬불 열두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후렴)
가노가노 언제가노 열두고개 언제가노
시그라기 우는고개 이내고개를 언제가노
바릿재를 넘어 임도로 걷다 보니 이 곳이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 서식지라고 알려준다. 울진은 산양의 남방한계선 지역이기도 한데 멸종 위기 동물로 환경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과연 길목 군데 군데 얼마 안 된 산양똥이 수북하다. 나무가 앙상한 겨울철이면 산양을 목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출발지에서 6.5킬로미터 걸어 드디어 점심식사 장소인 ‘찬물내기’에 도착하니 두천리 주민들이 점심을 준비해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마을 아주머니들 옆에 훤칠한 총각들이 함께 서서 비빔밥을 배식해줘 덩달아 웃음꽃이 피는데, 알고 보니 모방송국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름대로 시원한 찬물로 목을 축이고 두천리표 산채비빔밥을 먹으니 이 곳이 무릉도원이다.
보부상길을 걷는 내내 쭉 뻗은 금강송이 눈길을 사로잡고, 숲길은 솔잎으로 붉은 카펫을 깔아놓아 걷기에 더없이 좋다. 금강송은 재질이 금강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금강송이라고 불리우며 나무 껍질이 붉은 빛을 띠어 적송이라고도 한다. 우람한 소나무는 산림청에서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고 있었다. 아버지같이 든든한 소나무에 안겨서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내며 위안을 받는다. 소광리 최대의 할아버지 나무인 대왕소나무(추정 수령 600년)는 며칠 후, 6월 17일 산림청에서 4구간을 부분 개통하면 만나 볼 수 있단다.
바릿재보다는 다소 완만한 샛재에 올라오니 소박한 전각이 하나 보이는데 ‘조령성황사’라는 편액을 달고 있다. 성황당 터는 익히 보아왔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전각이 지어져 원형을 갖춘 성황사는 처음 보았다. 아담한 성황사가 샛재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한없이 아름다웠다. 노래에도 나오듯이 이 길은 보부상 뿐 아니라 과거 보러가는 선비도 지나는 길이었으니 성황사에 들러 소원을 정성껏 빌었으리라. 성황사에서 조금 내려가니 주막터가 있다. 금강송길 이곳 저곳에서는 아직도 무쇠솥 등 사람이 살았던 집터 흔적이 보이는데, 1960년대 울진, 삼척 무장공비 출현으로 주민들을 소개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초여름 더위 속에서 5시간째 숲길을 걷고 있지만 더없이 시원한 솔바람 때문인지, 성황사에서 무사히 고개를 넘게 해달라고 성황님께 빈 덕분인지 피곤한 줄 모른다. 가는 길 멈추고 대광천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니 신선이 따로 없다.
너삼밭재를 넘어 다시 마지막 가장 힘든 관문인 저진텃재를 올라야 한다. 보부상들은 십이령길을 보통 3일 걸려 다녔다고 한다. 숨이 차오르는 힘든 재를 오르내렸을 옛 사람을 생각하며 한발 한발 오르니 어느덧 저진텃재에 도착한다. 고개 마루에서 앞산을 바라보니 장쾌하게 뻗어있는 금강송 군락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저진텃재를 한시간정도 내려가기만 하면 소광리 종착지점에 도착할 것이다. 내려오는 도중 ‘황장봉계표석’이 있다. 조선 숙종 때 왕실에서 사용하는 황장목(나무속이 노란 창자 색을 띠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있는 산을 지정하여 일반인의 벌채를 금지한 표석으로, 울진의 금강송이 왕실 목재로 사용되었다는 징표이다. 숲 해설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보통 봉화 춘양의 금강송만을 춘양목으로 알고 있으나, 울진 소광리 금강송도 봉화 춘양역으로 운송되어 보내지기에 춘양목이라고 했다. 춘양에서 오는 나무가 목재로서의 가치가 높아 상인들이 너도나도 팔려고 가져온 자기 나무를 춘양목이라고 우긴다 해서 ‘억지춘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개를 내려오니 드디어 소광리 종착지에 ‘십이령주막’이 있다. 옛 보부상들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주막에 들어서니 점심 식사 때 만난 방송팀이 주막에서 막걸리를 소개하는 촬영을 하고 있다. 주모로 변장한 리포터 김정연씨의 환대를 받으며 지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막걸리를 들었다. 리포터 김정연씨는 고향이 익산이라 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금강소나무 길을 9시에 출발, 오후 4시경 도착하였으니 꼬박 7시간 걸렸다. 우리나라 트레킹 코스로는 중상 정도의 난이도라고 한다. 그러나 안내자인 주민들의 구수한 숲 해설과 역사문화 설명을 쉬엄쉬엄 들으며 걷는 숲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울진은 산림욕, 온천욕, 해수욕을 다 갖춘 지역이라고 소개하는 해설사의 얼굴에선 자긍심이 묻어나 보였다. 소광리에서 버스를 타고 나머지 십이령 고개길을 달리니 봉화가 다가온다.
출발지점에 있는 '내성행상불망비'
숲길 곳곳에 숨어있는 계곡
주민들이 점심밥을 준비해온다.
오래된 금강송을 번호를 매겨서 보호한다.
찬물내기 쉼터
조령성황사
주민들이 살았던 터에 무쇠솥만 남아있다.
솔잎으로 깔아놓은 융단! 길이 푹신하다.
익산이 고향인 리포터 김정연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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