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29 세밑, 위로 받을 곳이 필요했다. 겨울방학 다음날 언니네와 남양주 조안면에 위치한 수종사(운길산)를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조선의 문장가 서거정이 '우리나라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했다던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한 두물머리 풍경은 그냥 탄성만 나올 뿐이다. 특히 수종사내 다실 [삼정헌]에서 그윽한 차향기와 함께 바라보는 경관은 장쾌하다. 한겨울 언강에 하얀 눈이 쌓여 온 세상은 백색이다. 가슴이 뻥 뚫린다.
수종사는 세조와 정약용과도 인연이 깊은 절이었다.
'세조가 만년에 병을 치료하러 오대산에 갔다 뱃길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 양수리에서 휴식할때, 운길산에서 때아닌 종소리가 들려 신하를 보내 알아보게 하니, 바위벽에 16나한상이 줄지어 앉아 있는데 그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발심하여 절터에 절을 복원케 하고 수종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절에는 세조의 대고모가 되는 정의옹주 부도가 있기도 하다.
또하나 수종사는 다산이 어릴적 자주 올라가 공부하며 차를 마시던 곳이기도 하다. 산아래 마재에 다산의 고향집 여유당이 있으니, 이 수려한 경관을 다산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생각케 하는 시 한수를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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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했살 옷깃에 비춰 밝은데
옅은 그림자 먼 밭에 떠 있다.
배에서 내리니 자유로워 기분 좋고
골짜기에 들어서니 그윽하여 즐겁구나.
바위 풀 교묘하게 단장했고
산 버섯 둥글게 불끈 솟아나왔네.
아스라한 강변에 어촌 보이고
위태로운 산머리엔 절간이 붙어있다.
생각 밝아지니 사물이 경쾌히 여겨지고
몸이 높아지니 신선이 멀지 않구나.
안타까움은 뜻 같이하는 길손 없어서
현묘한 도 찾는 토론을 못함이로다.
--정약용, <봄날 수종사에서 노닐다>
대웅전 옆, 왼쪽부터 정의옹주 부도,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수종사 다보탑)
수종사 다실 '삼정헌' 이 곳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경관이 천하일품이다.
운길산 수종사 입구
수종사를 중건한 세조가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지는 550년된 웅장한 은행나무
다산 정약용(1762-1836)의 고향에 가다.
다산이 태어나고 자란 곳, 그리고 57세 유배지에서 돌아와 18년을 보내며 생을 마감한 곳, 고향집은 팔당호변 남양주 능내의 한적한 마재마을로 두물머리 마로 밑에 있었다. 마재마을 가는 길, 옛 중앙선 철로는 자전거길로 개조되었고 능내역만 옛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다산의 집에는 '여유당'이란 편액이 걸려있는데 '여유'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는 뜻인데, <노자>에서 따온 것으로 세상일과 자신을 경계하는 의미라고 한다. 다산은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여유당집>이란 이름으로 묶었는데 이는 뜻을 펼치지 못한 자신의 개혁사상을 후세에 전해 실행되기를 바라는 뜻이리라. 집 뒤편에는 정약용의 묘가 있는 유산이 있었다. 묘를 참배하기 위해 오르는 유산 초입에 정약용이 회갑을 맞아 지었다는 자찬묘비명에는 정조와의 신뢰와 각별한 정을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묘에 오르니 유배시절 정약용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열수(한강의 옛이름)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2012년은 다산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대실학자의 발자취를 잠깐이나마 더듬어보니 내 시름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여유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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