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2024 평화와 만나는 평화길 순례'
2024 평화와 만나는 평화길 순례
2024. 10. 9 한글날
답사경로: 전주-김제 정화암-아리랑문학관-아리랑문학마을-하시모토 농장사무소-동진강휴게소(점심)-부안서림공원(매창시비)-청구원(신석정 고택)-신석정문학관-전주
한글날, 김제 부안지역으로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이 주최한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김제, 부안지역 순례길은 푸른 하늘 아래 황금 들녘과 아름다운 코스모스꽃이 함께 해주었으니 더없이 평화로운 하루였다.
김제에서는 독립운동가 정화암선생(1896~1981)의 생가를 지나며 선생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보았다. 정화암선생은 3.1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으로 망명, 이회영, 신채호 등과 교류하며 무력투쟁 항일운동을 펼친 대표적 아나키스트이다. 1933년 의열단과 같은 상해해방연맹을 이강훈, 백정기 등과 결성하고 임시정부, 광복군의 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해방후에는 박정희 정권에 항의, 민주화운동가로 활동하였다. 평생을 독립운동가로, 민주화운동가로 사시다 간 김제 출신 정화암선생을 이제야 자세히 알게 되었으니 부끄러울 뿐이다. 문화원 정우식이사장은 정화암선생이 집안 어른이셔서 어릴적 세배다닌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다음으로 아리랑문학관을 찾아 조정래(1943~ )의 소설 '아리랑'의 무대인 김제 땅을 곱씹어본다. 아리랑은 4부 12권의 책으로 엮어졌으며, 아리랑을 쓰는데 4년을 예상했는데 4년 8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자료집엔 "4년 8개월은 그냥 쓴 날만 그렇고, 책을 쓰기 위해 조사하고 자료 수집하는 것까지 하면, 태백산맥을 쓴 기간까지 하면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문학관에는 아리랑을 쓰기위해 지구를 세바퀴 반이나 되는 수많은 취재 여행과 자료조사를 거치며 발로 쓴 취재수첩과 스케치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조정래 작가의 피나는 집필 과정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문학관을 나와 마당 한 켠에 있는 '청해진 유민 벽골군 이주 기념탑'앞에서 김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 이주의 역사를 들었다. 현지 안내문에 의하면 "청해진은 828년(통일신라 흥덕왕) 지금의 완도에 설치되었던 해군 무역기지로서 장보고가 당나라 무령군 소장을 엮임할 무렵, 중국 사람들이 신라 변방 사람들을 노비로 삼는 것을 보고 귀국한 후 설치한 것이다. 이후 장보고는 청해진을 근거지로 해적을 소탕하고, 동중국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하는 등 당과 신라, 그리고 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을 주도하였다. " 백성들의 우상이 되어버린 장보고와 청해진 세력을 두려워한 중앙정부는 장보고를 암살(841년 문성왕 3년)하고 851년 청해진 및 인근 주민 10만여명을 김제 땅인 벽골군으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한다. 역사속에서 한중일 해상권을 주름잡던 해상왕국의 기상이 김제 땅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문학관 한 켠에 있는 이 고장 출신 가수 '현숙효열비'를 보며 일행들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아리랑문학마을이다. 이 곳에는 소설에 나오는 마을과 거리를 재현해 놓았고, 만주 하얼빈역과 안중근의사의 의거 상황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조형물을 설치해놓았다. 우리 일행은 안중근 의사의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날의 총성을 기억해보았다. 작가는 일제 36년 동안 일제의 총칼 앞에서 삼사백만 명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전제로, 아리랑을 쓰는 목적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제치하 김제지역의 민중과 동포들이 겪은 수난과 저항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 아리랑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다음으로 김제시 죽산면에 위치한 구 일본인 농장사무소, 하시모토 농장사무소(등록문화재 제61호)를 찾았다. 현지 안내문에 의하면 하시모토는 1906년 군산에 들어왔으며 1911년 동진강 일대의 서포리 개간지를 불하받아 죽산으로 이주, 1916년부터 농장경영을 시작하며 수탈을 일삼은 자이다.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하시모토농장사무소는 해방 이후 개인병원, 동진농지개량조합 죽산출장소 등으로 사용되다 2003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하시모토 농장사무소를 나오니 어느덧 12시, 점심 식사를 하러 새롭게 단장한 구 동진강휴게소에 자리한 식당에 들렀다. 2층 전망대에 오르니 유장하게 흐르고 있는 동진강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멀리서 참석한 지인들은 1층에 있는 농산물판매소에서 쌀과 표고버섯을 사느라 부산하다.
오후는 부안지역의 신석정 시인(1907~1974)과 매창(1573~1610)을 찾아가는 일정이다. 우리 일행은 먼저 두 시인의 숨결이 어려 있는 서림공원에 올랐다. 조선시대부터 부안 수령과 유지들이 가꾸어왔다는 서림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부안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질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정상에 위치한 정자에서 바라보는 부안 황금빛 들판과 계화도,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같았다. 석정 시인도 “서림공원은 내 젊은 꿈이 한 그루 한 그루에 새겨진 유일한 산책의 길이었다.”고 회고하였다고 한다. 정자에서 부안 지역교육에 애정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명희 선생님(계화중)의 신석정시인의 삶과 시에 대한 열정적인 설명을 들었다. 부안에서 태어난 신석정 시인이 보통학교 시절 동맹휴학을 일으켜 무기정학에 처해졌다는 이야기,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부안문화연구회’ 활동을 한 이야기, 1946년 부안중학교 개교에 힘을 보탠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석정시인은 1949년 부안중에서 국어교사를 시작으로 전주고, 김제고, 전주상고에서 20여년간 교사로 재직했던 분이어서 더 정겹다. (참조: 신석정과 함께 걷는 민주화길, 2022. 부안교육지원청). 이어서 기행에 함께한 김영춘시인은 신석정 시인의 가족사를 통해 시인의 시 세계는 목가적일 수만은 없었으며, 시대를 아프게 살다간 시인의 삶과 시를 조명해주었다. 시인의 삶 속에서 박한영스님, 가람 이병기선생, 춘헌 이영일, 언론인 이익상 등의 인물과 관련된 얘기도 흥미진진하였다.
다음으로 우리 일행은 서림공원 입구 쪽에 자리한 매창 시비에 도착했다. 시비엔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매창의 시와 무덤에 함께 묻었다는 거문고가 새겨져 있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 시는 1592년 20살 무렵, 촌은 유희경(1545~1636)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쓴 시로 유명하다. 유희경은 천민 출신이었으나 시에 능해 서로 대화가 통했으며,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양반이 되었다고 한다. 노래를 잘하고 거문고를 잘 타며 시에 능한 매창은 당대 문인들이 만나고 싶어했던 부안의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허균(1569~1618)과의 10년에 걸친 우정은 유명하다. 정신적 사랑을 나누었던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균은 ‘계랑(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라는 시를 남겼다.
평생 부안을 떠나지 않았다는 매창은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매창이 죽은지 45년만인 1655년 묘비가 세워졌고, 1668년에 부안의 아전들이 수많은 매창시 중 54편을 모아 개암사에서 ‘매창집’을 발간하였다고 한다. 이매창의 묘(지방기념물 제65호)는 부안읍 ‘매창 사랑의 테마공원’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 일행은 매창과 아쉽게 이별하고 다시 석정시인의 고택 ‘청구원’으로 향했다. 청구원은 4칸집 아담한 초가집으로 석정시인이 1952년 전주로 이사하기까지 살던 고택으로 신석정문학관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앞마당엔 꽃과 나무를 무척 사랑했다는 시인이 가꾼 온갖 나무와 우거진 시누대밭이 있었다고 한다. 전주에 있는 시인의 거처였던 '비사벌초사'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면 청구원의 뜰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간다. 우리 일행은 청구원 마루에 앉아 가난했지만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참다운 생활을 한 절정의 시기"라고 했다는 시인의 얘기를 들으며 시를 낭송해보았다.
네 눈망울에서는
신석정
네 눈망울에서는
초록빛 5월
하이얀 찔레꽃 내음새가 난다.
네 눈망울에서는
초롱초롱한
별들의 이야기를 머금었다.
네 눈망울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아득한 종소리가 들린다.
네 눈망울에서는
머언 먼 뒷날
만나야 할 뜨거운 손들이 보인다.
네 눈망울에서는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산의 서곡' 1967
어느덧 해가 뉘엿 뉘엿 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석정문학관을 돌아보고, 우리 일행은 문학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글날! 조정래, 신석정 두 작가를 다시 만나서 행복했던 하루였다.